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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지역소식

마샬제도공화국 | 유노아 수녀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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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명사랑나눔 작성일19-09-17 17:56 조회1,0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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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수녀님

     : 예수성심전교수녀회

현 부임지 : 마샬제도 잘루잇 성 요셉 초등학교

 

1. 노아 수녀님 안녕하세요

먼저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 회원분들게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Yokwe! (야꿰 = 안녕하세요!)

은총의 비를 듬뿍 맞으며 마샬제도에서 소임을 하고 있는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유노아 수녀 인사 드립니다. 저는 신자였던 어머니의 덕분으로 유아 세례를 받았으며,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는 공소가 있는 마을에서 하루의 고된 농사 일을 마치고 주무시기 전에는 꼭 성경을 읽으신 후 묵주기도를 드리시던 어머니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수도자가 되라고 권유하신 적이 없었지만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그 조용한 기도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에 예수성심전교수도회의 한 신부님과의 인연으로 저희 수녀회에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에 첫 서원을 했고, 2006년에 종신서원을 했습니다. 서원 이후 저는 두 곳의 사회복지 시설에서 소임을 한적이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본당에서 소임을 하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본당에서 주일학교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참 행복했고, 제가 주는 사랑을 스폰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응답을 듬뿍 받으면서 본당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이곳에서 초등학교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곳 마샬제도에는 2015년에 자원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고 수도회의 든든하고 안전한 보호막 속에서 신자 분들의 사랑과 존중을 듬뿍 받으며 살았던 한국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조금은 척박한 이곳에서 지낸 지도 벌써 4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있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저를 여러모로 준비시켜주셨음에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환경과 사회복지 시설에서의 행정업무 소임, 본당에서의 아이들과 함께 했던 소임, 제 개인적으로 음악과 미술에 취미가 있는 것, 그리고 제가 공부한 유아교육과 교육학을 통해  얻어진 경험들을 이곳에서 맘껏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제게 주어진 이 소임을 무척 사랑합니다.

 

2. 마셜제도 잘루잇 성 요셉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계시는데요, 마셜제도는 어떤 나라인가요?

마샬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열 개의 나라 중 하나에 포함이 됩니다. 적도 부근의 남태평양에 위치하고 있어 파란 바다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야자수가 더없이 아름다운 남국의 정서를 지닌 섬나라 입니다. 나라 전체가 조그만 섬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바다를 경계로 섬 하나 하나가 이 나라의 각 지방에 해당됩니다. 제가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도 가끔씩 이렇게 작은 나라도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인터넷 정보에 따르면 마샬제도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동해시 정도의 넓이이며, 경제적인 수준은 우리나라의 과천시 정도의 규모라고 합니다.

모든 섬들의 형태는 좁고 길쭉한 띠가 바다에 늘어져 있는 형상이며, 섬 어디서나 좌.우로 2~3분만 걸으면 바닷가를 거닐 수 있는 나라 전체가 해변(바닷가) 마을이나 다름없습니다. 넓은 땅이 없어 대량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어렵고, 큰 공장을 세울만한 장소도 없으며, 그것을 추진할만한 경제적 여건도 되지 않아 모든 공산품과 대부분의 식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바다 말고는 지닌 자원이 없는 이곳은 교육 수준이 낮으며 인적 자원도 부족해서 다른 나라의 원조 없이는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40~50년 전의 수준과 비슷한데 일부 지역에서 인터넷과 핸드폰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릅니다.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아직도 신분제가 뚜렷하게 남아 있어 실질적인 힘을 가진 이들은 기존의 각 추장들이며 역대 대통령들은 이들 가문에서 배출되었습니다.

이곳에 가톨릭이 전파 된지가 올해로 127년째인데 현지인 성직자 수도자 현황은 작년(2018)에 돌아가신 연로한 마샬인 수도자 한 사람 뿐입니다. 현재 이곳에서 소임을 하고 있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모두 저와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입니다. 그나마도 숫자가 부족해서 이들에게 충분한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전부터 많은 노력들이 있어 왔으나 성문화가 개방되어 있고 배우자가 없는 삶에 대해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들의 문화 때문에 앞으로도 자국인 성직자와 수도자 배출은 쉬운 일이 아닐 듯 합니다.  

 

3. 그곳에서 하시던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가 있는 곳은 마샬제도의 수도인 마주로에서 비행기로 40분 정도, 배로는 9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에 위치한 잘루잇섬 입니다. 여기에 예수성심 성당과 성당 부속인 성 요셉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저는 이곳 초등학교에서 저학년의 종교수업과 고학년의 음악수업을 맡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교육 수준과 경제적인 수준으로는 기본 과목(마샬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만을 가르치기에도 벅차기에 수도 마주로에 있는 특별한 몇 개의 사립학교 말고는 예체능 수업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배우는 음악 수업과 미술을 곁들인 종교수업은 아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입니다. 악기를 배우고 여러 가지 미술 재료들을 이용해서 수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활기가 넘치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합니다.

부수적으로 제가 자진해서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방과후 수업입니다. 일년 전 아이들의 성적 향상을 돕기 위해서 방과후 수업을 시작했고 동시에 오전 쉬는 시간(한번이며 30분 가량 됩니다)에는 악기 연습, 장난감 놀이, 게임도구 활용 놀이, 미술 재료 이용해서 만들기 등의 목적으로 도서관을 개방했습니다. 방과후 수업은 주로 영어를 지도하는 것으로 운영했는데, 내년 학기부터는 수학과목도 추가할 계획입니다. 평균 25명 정도의 아이들이 와서 영어 동화책을 읽고, 영어 쓰기를 하면서 공부를 한 다음 맛있는 간식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 갑니다. 일년이 지나서 학년을 마무리할 때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참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4.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많으실 것 같아요.

문화가 한국과 너무나 다르고 난생 처음 접한 마샬어 때문에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모국어인 마샬어와 제2외국어인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는데, 지방에 해당하는 잘루잇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모두 마샬어를 사용합니다. 처음 마샬어를 배우면서 수업을 진행 할 때 제가 아이들에게 마샬어를 엉뚱하게 사용한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유치부 수업 중에 활동을 마치고 앉으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엉거주춤 하면서 앉아야 할지 선채로 있어야 할지 혼동을 하는 거예요. 제가 계속 주닥! 주닥!”(일어나세요!)이라고 말하면서 손 동작으로는 앉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음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6학년과의 음악 시간이었습니다. 칠판에 적어놓은 음계를 읽으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전혀 읽지 않고 칠판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차 읽으라고 하면서 음계를 하나하나 어 가려고 하다가 그만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영어 알파벳으로 ‘Do mi mi....’ 라고 적었어야 했는데 저도 모르게 한글로 도 미 미…’라고 적어놨던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참을 웃었습니다.

유치부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잠깐씩 반복해서 손가락 관련된 가족 명칭노래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노래는 엄지 손가락은 아빠를, 검지는 엄마를, 중지는 오빠를, 약지는 언니를, 그리고 새끼손가락은 아기를 가르치는 노래였지요. 그 노래를 익힌지 이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습니다. 한 아이의 집에 가서 그 아이에게 아빠 어디 계서?”라고 물었습니다. 제 질문에 아이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이면서 사랑스럽게 웃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아빠 어디 계시냐고?” 그 아이는 다시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 보이면서 씩 웃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실제로 아빠를 찾는 것을 손가락 가족 노래에 대한 질문으로 알아들었던 것이지요. 결국 그날 그 아이에게 아빠가 어디 계시는지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 아이가 계속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다른 문화와 언어로 인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추억들이 참 많은데요, 그 추억들이 저를 미소 짓게 하고 힘이 나게 해주고 있지요. 멀리서 저를 보면 소리쳐 제 이름을 부르면서 꼭 인사를 하는 아이들, 제가 가르쳐준 사소한 것도 기억했다가 자랑스럽게 재연해 보이는 아이들, 심술궂은 아이들을 대신해서 혼내주는 아이들, 마샬어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아이들과 함께 할 때 저는 참 행복합니다.

 

5. 지난 해 휴가 중 본부에 방문하셨을 때 뵙고 현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인 인프라도 구축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시면서 어려움이 굉장히 많으실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에 오지에 가서 살라고 하면 살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 장담하고 있었고, 더위를 잘 견디는 체질과 음식을 가리지 않는 좋은 식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곳에서 적응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보편적인 먹을 거리를 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거리는 따로 팔지 않으니 구입이 불가능하고 채소나 과일은 전혀 없기 때문에 쌀과 캔 음식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선택의 폭은 아주 적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렇듯 먹을 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저의 배는 항상 홀쪽하고 살이 찔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도인 마주로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일년 동안 부족했던 영양 섭취를 위해서 음식을 부지런히 열심히 먹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나라 전체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체계적이거나 규칙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공 시스템인 비행기 날짜와 시간도 시시때때로 변경과 취소가  많으며, 배편은 정규적으로 운항도 하지 않습니다. 기본 식재료인 쌀이나 밀가루 설탕과 같은  물품들이 섬 전체에 바닥이 날 때까지 몇 달씩 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일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일어나고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어떤 일을 진행할 때는 항상 대기를 해야 하고 그 일이 정확하게 일어날 때까지 묻고 또 물어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루잇에는 있는 물건보다는 없는 물건이 대부분이고, 가격도 두 배로 비싸기 때문에 마주로에 나갔을 때 일년 동안 필요할 물품들을 미리 구입 해야 합니다. 책이나 학습 관련 재료들은 마주로에서도 구입할 수 없어서 인터넷으로 구입을 합니다. 이렇게 구입한 물품들도 배편이 준비될 때까지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이곳에의 삶은 기다림의 삶입니다.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과 이곳 사람들의 문화와 습관을 이해하고 이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한국에서 빠르고 바쁘게 살아왔고, 제 몸도 마음도 그것에 익숙해져서 이들의 느린 문화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지만 지금은 이들의 느림을 여유라고 생각하면서 적응하고 습니다.

 

6. 휴가 다녀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동안 연락이 전혀 닿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통신장비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본원에서도 연락할 수단이 없어 굉장히 걱정하셨었다고 들었어요.

휴가(2018)를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통신이 두절되어 석 달 넘게 전화도 인터넷도 전혀 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는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서 여기에 살고 있는 저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만 되는 날 보다 안 되는 날이 더 많으며, 그나마도 잦은 기계 고장으로 짧은 기간(며칠, 혹은 일주일) 통신 두절은 일상이고 장기간 통신 두절(두 달, 세 달)도 자주 있는 일입니다. 처음에 장기간 통신 두절을 접했을 때는 혼자서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왜 빨리 고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여기의 상황에 자연스레 적응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가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그냥 무한정 기다립니다. 세계에서 최고의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우리 한국과 비교하자면 너무나 답답하지만 지금은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곳에도 인터넷이 연결 되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지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걱정이 많으신 수녀님들께 여기는 중동처럼 분쟁 지역이 아니라 삶의 위협이 있는 건 아니니 가끔 연락이 두절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라고 안심시켜 드립니다.

 

6.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겨내시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신가요?

잘루잇 섬 안에 한국인은 저 혼자이며,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수녀님도 외국인이십니다. 조금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매너를 가진 사람들, 30분 정도면 섬을 모두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물리적 공간과, 작은 섬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아 어디든 사람이 넘치는 이곳은 어려움이 있을 때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도망 가서 숨을 곳이 전혀 없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무도 없는 성전이나 비교적 인적이 드문 조용한 성전 뒷 편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그냥 끌어 안고 견디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방법도 소용이 없을 때는 무작정 걷습니다. 묵주 하나 들고 집에서 공항까지 걸어가서 공항의 활주로를 걷고 또 걷습니다. 불타는 태양의 뜨거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제 몸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 정신이 오히려 맑아지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이 가난한 나라에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제 마음이 아플 때 잘 위로해 주고 있지요.  

 

7. 저희가 마셜제도공화국에 대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을까요?

마샬제도는 전체적인 비 문명 속에 약간의 문명이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소박합니다. 이 소박함과 가난함은 어린 시절 우리들의 시골마을을 떠올리게 해서 정겹게 느껴져 때때로 살며시 미소를 짓습니다. 이곳은 가난한 나라가 그렇듯 먹고 입는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도 바쁜 터라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밝고 씩씩하고 정열적입니다. 그러나  좋은 롤 모델이 되는 어른이 부족하고, 외부 문명과의 교류도 많지 않아 아이들이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고 꿈을 키워갈 수 있는 환경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주어진 재미 있는 상황 외에는 미래에 관심이 없는 이곳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무엇인가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