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서티모르 맘세나 2 - 이 토마스 수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 작성일17-09-07 16:41 조회1,374회 댓글0건본문
인도네시아 ‘맘세나’에서의 선교
예수성심시녀회 Sr. 이현옥 토마스
요즘 들어 라웅 화산폭발로 자카르타에서 서티모르의 맘세나로 가는 항로는 더욱 위험 부담을 준다. 그래서 탑승자들은 말은 하지 않아도 그 모습들에서 긴장감을 느낀다. 나도 역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기내가 흔들릴 때마다 “주님 아직은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요.” 라고 하면서 주님의 보호에 매달린다. 그러다 옆 좌석에 앉아있는 모슬렘 아주머니를 보니 그녀도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러는 동안 4시간의 항로 길을 무사히 건너 인도네시아 동쪽의 수도로 불리는 티모르섬 쿠팡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여기서부터 선교지 맘세나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산길로 또다시 7시간을 달려야 한다. 내 몸무게의 3배가 넘는 짐들을 챙겨 들고 험하고 위험한 길에 오르면 그나마 남은 힘은 모두 바닥이 나 버리고 만다. 기진한 상태에서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살아온 그 모든 생활들이 힘든 시간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안락한 환경의 과분한 삶이었다. 흔들리는 차창에 반눈을 뜨고 이렇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와 기쁨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나의 진실한 참회의 기도일 것이다.
지금은 나에게 한 끼의 음식과, 샤워를 할 수 있는 한 바가지의 물과, 밤 기도 시간에 잠깐 동안 밝힐 수 있는 초 한 자루만 있으면 풍족한 상황이다. 외부와의 소식은 끊기고 오직 하늘의 별들과 초록빛 공기 속으로 잠기는 고요한 마음 안에 피어나는 이 기쁨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전 날에 풍족하게 지내던 도시 생활의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하다. 이 행복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전화도 하지 못하고 전자 우편도 주고받을 수 없는 앞뒤가 꽉 막힌 이곳에서 나는 너무도 갑갑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이 적막한 생활에서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주님께서 베푸신 크나 큰 은혜를 깨닫게 되었고 만끽하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정신을 깨어보니 밖은 어두워졌고 어느새 맘세나 작은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이곳은 해가 지고 두 시간이 지나야 달이 뜨기 때문에 이른 밤이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이다. 그러나 언제나 하늘 가득히 별들이 초롱초롱 반기고 있다.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를 뿐, 인위적인 법칙은 여기서는 힘을 잃고 만다. 어두워지면 새들처럼 자고 날이 밝으면 일어나 활동을 한다. 그들은 맨발로 다녀서 발이 코끼리 발처럼 두껍고 나무껍질처럼 갈라져 거칠다. 그래도 그들은 늘 즐겁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3년 넘게 선교를 하면서 선교의 방법을 말하라고 하면 한 마디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만의 특별한 개성을 만들 필요가 없다. 내가 그들 보다 좀 우위의 환경에서 왔다고 해서 특별한 행동을 하거나 그들에게 그것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문화 속에서 그들과 닮은 생활을 하는 것이 선교의 기초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지금 처음 선교를 나오는 분들을 보면 첫 눈에 띄는 것이 이곳의 문화를 수용하기보다는 우리의 문화를 고수하거나 전파하려는 욕심 같은 것, 또는 약간의 우월감 같은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는 사람은 잘 적응하여 선교를 잘 하게 되는데, 적응하지 못하면 상처만 받고 돌아가고 만다.
한국 사람들이 보면 기겁할 일들이 이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홍수가 나서 오염된 더러운 흙탕물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일, 도마뱀이 집안을 기어 다니는 일, 모기가 밤새도록 물어뜯는 일, 만원이 된 미니버스, 그 속에 땀에 찌든 승객들,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미소를 잃지 않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또 비가 오면 운동화를 물에 젖게 하지 않으려고 머리에 이고 가는 아이들, 바나나 잎사귀로 우산을 만들어 쓰고 가는 사람들, 모두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상한 것은 아무도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지 않는 것이다.
올해 40주년을 맞이하는 맘세나 성당은 여기저기 벽과 천장 갈라져 있어서 어디서부터 보수를 해야 할지 난감하다. 또 이 성당에서 좀 떨어져 있는 세콘이라는 곳의 공소는 더 열악하여 코코넛 나무로 지은 집이 겨우 지붕과 벽의 형태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공소를 가득 메운 신자들의 힘찬 성가소리는 고대 성당의 웅장한 건축물 같다. 처음 세콘 공소에 갔을 때 받은 이와 같은 감동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의 신앙을 보면서 아! 이런 곳에서 우리 주님이 찬미를 받으시는구나 하며 감동과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마치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가난한 모습을 여기서 체험하는 것 같았다.
그곳의 코르넬리 본당 신부님은 멋진 공소를 짓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강론시간에 이렇게 표현 하셨다. “여러분들이 돈을 내지 않으니까 공소가 이 모양이에요. 이런 곳에서 미사를 드리니 이곳을 방문하신 수녀님이 너무 부끄러워 눈물을 흘리는거에요.” 나는 신자들의 굳센 믿음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보였는데 신부님은 나의 이 모습을 잘 못 해석하신 것 같다. 그 때문에 내가 신자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저러나 세콘 공소 신자들은 이때부터 시멘트와 모래를 조금씩 가져와 기둥을 세우고 바닥을 만들며 자기들 힘으로 공소를 짓겠다고 나섰다. 궁핍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애써 힘 모아 짓고 있는 공소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겠다. 그들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과부처럼 아낌없는 봉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성 프란치스코가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는 것처럼 한 땀 한 땀, 하느님의 성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맨 처음 이곳을 별 준비 없이 방문 했을 때, 신자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묵주가 있으면 달라고 했다. 나는 여분의 묵주가 없어서 다음에 올 때 꼭 갖다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 후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각 가정에 여분으로 있는 묵주들을 너무도 많이 모아 주셔서 충분히 선물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묵주가 없어서 줄이 끊어진 묵주를 이리저리 연결해서 사용하다가 튼튼한 묵주를 갖다 주었더니 보석을 선물 받는 것보다 더 기뻐하였다.
사람들은 가난한 생활을 하지만 맘세나의 밤하늘은 언제나 이들의 마음처럼 곱고 풍요롭다. 별 별 별 별들의 향연, 맘세나의 우리 유치원 아이들과 기숙사 학생들은 별을 보며 잠들고, 별을 여행하고 새벽별과 함께 눈을 뜬다. 때 묻지 않은 그들 마음 안에 주님 함께 계심을 체험하면서 그들 속으로 저를 인도해 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