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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지역소식

캄보디아 | 캄보디아에서 앓는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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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명사랑나눔 작성일18-03-12 14:36 조회5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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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캄보디아 선교사 김분선 마리아도미니카 수녀

    

 

 

캄보디아 대중교통은 주로 오트바이, 툭툭이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요금 미터기가 달린 삼륜오트바이도 생겼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다 늘 마음이 아프다.

그것은 가격을 흥정해야 하기 때문인데 매번 가격으로 실경이를 벌이고 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도 어김없이 프놈펜에서 업무를 보기 위해 이동을 해야 하는데

툭툭이를 탈지 오트바이를 탈지 마음이 흔들린다.

내가 길에 나오니 기사들이 내 주변을 둘러 사고 흥정을 시작한다.

10달러 6달러 오트바이는 4달러~~

저마다 자기 가격을 이야기하며 가격이 합당한 이유를 댄다.

여기서 거기까지는 엄청 멀다.

나는 말한다.

내가 여기 좀 살아서 가격을 대충 아는데 너무 비싸게 부른다고 하니 모두 침묵을 지킨다.

나도 흥정을 했다. 5달러 어때?

모두가 너무 깎는다 거리가 얼마나 먼데 그렇게 깍느냐고 난리다.

그럼 나는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니 삼륜차 기사가 나를 따라오며 조금만 올려주면 안되겠냐고 한다.

나는 5달러를 고집했다.

 

툭툭이는 복잡한 도심을 비켜 골목길을 택했다.

프놈펜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늘 교통 체증이 심하다.

먼지도 많이 나고 날씨는 덥고 .......

기사도 나도 힘든 오후 시간을 맞이했다.

10분이면 도착할 곳을 거의 30분이 지나간다.

기사가 길을 잘 모르나 왜 이렇게 멀지... 내가 너무 가격을 깎았나~

갑자기 기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더운 날씨에 운전한다고 고생하는 아저씨에게 돈을 더 올려줘야 하나~~

자꾸 마음이 불편하다.

아저씨는 길이 너무 멀다고 계속 내게 주입 시키는 듯 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꾹 참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주고 싶었지만 또 다른 외국인들을 생각해서

정한 가격을 주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아저씨는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릴까 묻는다.

그러면 기다리는 비용도 내가 부담해야 하는데...

손님이 있으면 가시고 없으면 기다려서 다음 행선지로 가자고 했다.

일을 마치고 나오니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손님이 있었는가 보다.

    

 

프놈펜에서 일을 마치고 뿌삿으로 귀가를 하기 위해 또 대중교통을 갈아 타야 한다.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봉고(짐을 실고 사람도 실어 나름)를 이용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봉고가 잘 오지 않았다.

뜨거운 오후 시간 차를 기다리자니 온몸에 땀이 흐르고 머리에 열이 났다.

30분을 기다리니 봉고가 한 대 왔다.

차 안에는 짐이 가득 있었다.

그 사이에 손님이 앉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나는 빨리 귀가하고 싶은 마음에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봉고차는 에어컨이 없었다.

얼마나 더운지 내 가방이 열을 받아 무릎이 뜨거웠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무릎에 빨간 반점이 생겼다.

차가 출발하자 말자 손님이 생겼다.

옥수수 4가마니와 콩 2자루를 실어 달라고 한다.

기사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실었던 짐을 밖으로 다 꺼내기 시작한다.

비지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며 일을 했다.

옥수수가 무거우니 밑에 깔고 그 위에 배달할 박스를 올렸다.

이제는 사람이 앉을 더 이상의 공간도 없다.

그러면서 나에게 뚱뚱한 여자 손님과 같이 조수석에 앉아라고 했다.

나는 안된다고 하며 거절했다.

나도 짐이 있어서 앉아 가는데 불편한데 뚱뚱한 아주머니까지 않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짐과 짐 사이에 조금 있는 공간에 조수와 앉았다.

그들은 앉자 말자 마침 가족처럼 웃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나는 그때부터 또 마음이 불편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전투 같은 삶을 사는데

나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하고 짜증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금을 주고 차를 타는데도 왜 마음이 불편한지 알 수가 없었다.

더 마음이 불편한건 아주머니였다.

이슬람 사람이라 히잡에 뚱뚱한 몸에 ... 얼굴이 익어서 발겠다.

앞자리에 함께 태우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한시간 후 옥수수 아주머니 집 앞에 도착했다.

차가 서고 옥수수 자루를 내리기 위해 다른 짐을 또 내려야 했다.

기사는 무척 힘들어 하면서 그 일을 다 마쳤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앞자리에 앉는 것을 거부해서 미안하다고 하니

괜찮다고 하면서 자신이 옥수수를 사와서 파는데 남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옥수수를 5자루를 샀다.

기사에게 한 자주 주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왔다.

기사는 아무 말없이 옥수를 먹고 시동을 걸었다.

20분쯤 가니 길에 또 손님이 있었다.

이번에는 박스 5개를 가지고 서 있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탔다.

2시간이면 도착할 차가 4시간이 걸렸다.

    

 

적은 비용으로 편하게 집까지 오고 싶었던 나의 얄팍한 생각이

오늘은 완전히 빗나간 하루였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이기도 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웃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마음에 비해

나의 마음은 너무나 좁아 보였다.

캄보디아에 있는 나는 늘 마음이 불편하다.

나의 삶과 캄보디아 인들의 삶이 비교되고

나는 아직도 한국인으로 이곳에서 살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언제쯤 캄보디아 사람이 되어 갈까 질문해 본다.